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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까지 잘생기게'…정은채, 처음 보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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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맥주킬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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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화려한 전통 한복에 눌러쓴 복두 아래로 반듯한 구레나룻이 떨어진다. 그 밑으로 베일 듯한 턱선은 한 번 눈길을 끌고, 날카로운 콧날은 두 번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터지는 중저음의 보이스. 영락없는 남자 주인공이다. 사실, 배우 정은채가 드라마 '정년이'에서 완성한 문옥경이다. 그가 남장여자 열연으로 신기루를 선보였다. 


단번에 여자국극(모든 배역이 전원 여자인) 작품에 최고 남역 스타로 변신했다. 인생 첫 숏컷부터 첫 남장, 첫 소리, 첫 국극, 배우 정은채에게 '정년이'는 모든 도전 과제였다.


"소리, 춤, 무대 연기, 목검술, 장구, 북 등 배울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차 트렁크가 사물놀이패 같았죠. 정말 연습밖에 없었습니다. 걸음마 떼듯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했죠."


그럼에도 정은채는 "다시 돌아간다고 해더라도 문옥경을 연기하고 싶다"며 "옥경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톤이 나오는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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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숨도 잘생겼던 옥경 선배 뒤, 정은채


'정년이'는 국극 드라마다. 배경은 1950년대 한국전쟁 후.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소리 천재' 정년이를 둘러싼 경쟁과 연대, 그리고 찬란한 성장기를 그린다. 


드라마는 지난 17일 종영했다. 첫 회 4.3%로 출발했으나 점차 입소문을 타고 최고 시청률 16.5%(전국 가구)를 찍었다. 인기의 중심에는 정은채가 있었다.


정은채는 "작품이 사랑받는 게 가장 기분 좋다"며 "50부작이었으면 좋겠다는 시청자의 반응을 봤다. 너무 재밌더라"고 뜨거웠던 시청자 반응을 회상했다. 


그는 극 중 문옥경의 옷자락을 입었다. 옥경은 현시대 최고의 국극 남역 배우. 관객에게 그가 여자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게끔 완벽한 연기력을 소유한 인물로, 숱한 팬들을 몰고 다닌다.


현실에서도 옥경의 화력이 이어졌다. 많은 여자 팬은 정은채의 연기에 환호했다. '한숨도 잘생기게 쉰다', '최고의 왕자님', '옥경 선배 보려고 정년이를 본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정은채는 "신인 남자 배우인 줄 알았다는 평이 기억난다"며 "극 중 많은 인물들이 문옥경을 선망의 눈과 마음을 가지고 대해줬다. 시청자에게 그 마음이 이어진 덕분이다"고 겸손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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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남극 스타 뒤, 정은채의 열전


모든 공을 함께한 배우들에 돌렸지만, 완벽한 캐릭터 접신 뒤에는 단연 정은채의 연기 열전이 있었다. 그는 "배우 인생에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았다"며 마음가짐을 밝혔다. 


정은채는 차근차근 문옥경을 만들어갔다. 먼저 긴 머리는 싹둑 잘라버렸다. 비주얼부터 눈빛, 걸음걸이까지 완벽한 남자를 표현하고자 했다.


"첫 대본 리딩때 머리를 커트하고 갔습니다. 사실 그전에 테스트 촬영이 많아서 가발도 써보고, 여러 숏헤어도 만들어봤죠. 숏컷을 하자 캐릭터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은채는 "촬영 1년 동안 스타일을 유지해야 했다"며 "계속 길이감을 맞추기 위해 현장에서도 머리카락을 잘랐다. 남자들이 몇 주에 한 번씩 미용실 가는 이유를 알았다"며 웃었다. 


그는 "큰 도전이었다. 인생 첫 숏컷이었다"면서도 "외적인 변화만으로 완벽한 남자를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과하지 않게 적정선을 찾아가려고 애를 썼다"고 설명했다. 


발성에도 변주를 줬다. 그는 "평소에도 두 톤을 낮춰 말하고 연습했다"면서 "국극 무대 위에선 더 극적으로 발성을 내뱉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탄생한 문옥경은 우리가 알던 배우 정은채와는 180도 달랐다. 도시적이고 세련된 여배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도 "저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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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왕태자 뒤, 정은채의 연습


무엇보다 정은채의 새로운 얼굴은 무대 위에서 폭발했다. '바보와 공주', '자명고', '춘향전' 등 수많은 하이라이트 신을 남겼다. 국극은 그가 뛰어놀 수 있었던 놀이터였다.


먼저 분장과 의상의 재미와 덕을 톡톡히 봤다. 정은채는 "국극 분장이 2시간도 넘게 걸렸지만 즐거웠다"며 "의상, 분장 등 풀세팅이 돼야만 국극의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리 연기에는 모든 걸 쏟아냈다. 정은채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소리 선생님들의 몸 움직임과 소리 표현 방식을 가까이서 봤다"며 "처음 접해보는 것이라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실제 1950년대 여자국극 무대까지 참조했다. 국극스타였던 조금앵 배우 등의 인터뷰와 다큐, 사진 자료도 연구했다. 정은채는 "그분들이 실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시는지까지 확인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남자 배우들의 연기에서 모티브를 얻기도 했다. 정은채는 "다양한 작품 속 남자 캐릭터들을 보며 연구를 많이 했다"며 "저만의 멋진 남성성을 표현해 보자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무대는 정은채에게 심판대 같기도 했다. 그는 "무대 경험이 없다 보니, 무대 연기가 너무 떨리더라"며 "관객의 반응이 즉각적이라 재미도 있었다. 무대 연기에 대한 욕심까지 생겼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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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좇는 사람, 배우 정은채


'정년이'는 결론적으로 꿈을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들은 어떠한 시련에도 각자의 꿈과 목표를 위해 나아간다. 배우 정은채의 연기 집념과도 닮아 있다.


"저는 '잘한다, 좋다'를 들었던 얼굴을 계속 반복하고 안주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매번 작품 속에 큰 과제가 주어지면 그걸 통해 많이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정은채는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계속해서 숙제를 해 나가는 기분이 어렵지만 원동력이 된다"며 "앞으로도 용기 있게 도전하고 싶다"고 외쳤다.


지금껏 선보인 캐릭터들이 그의 다짐을 증명한다. '안나' 현주로 천진난만한 악역을, '파친코' 경희로 시대의 아픔을, '정년이'로는 남역까지 뛰어들었다. 


"저는 연기를 할 뿐이에요. 시대극에 잘 어울리는 비법이요? (웃음)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작품은 제가 다 만들어가는 건 아니니까요. 모두의 피땀 눈물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은채가 문옥경의 답변을 건넸다. 그는 "정년이가 저에게는 용기였다. 오래 기억에 남는, 문옥경 같은 작품이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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