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판

영화 '어린신부'에 대한 2004년자 듀나 리뷰

작성자 정보

  • 맥주킬러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16976517437698.jpg



전 될 수 있는 한 영화의 소재에만 매달리는 일반론적인 비판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소재가 미성년자와 성인의 성적 관계처럼 위태로운 것이어도 마찬가지지요. 꼭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예를 들지 않아도 말이에요.


제가 [어린 신부]라는 영화를 좋게 보지 않았던 것도 16살 소녀와 24살 청년의 결혼을 다루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 아닙니다.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굉장히, 정말 굉장히 나빴기 때문이죠.

설정은 바로 위에서 이야기했습니다.
할아버지들이 젊었을 때 한 약속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생인 여자아이 보은이 친척처럼 친하게 지내던 오빠 상민과 강제 결혼합니다.
둘은 새 아파트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하지만 당연히 이 비정상적인 관계는 문제 투성이입니다. 물론 두 사람들간의 관계는 보은의 고등학교에서는 비밀입니다. 아직 신부가 어린아이나 다름 없으니 부부관계도 없고요.

결정적으로 보은은 야구부의 선수인 학교 선배와 순진한 첫사랑을 시작했습니다. 영화는 이 모든 것들을 로맨틱 코미디의 소동을 만드는 재료로 삼습니다.

우선 할아버지의 동기부터 짚고 넘어갑시다. 보은과 상민이 서둘러 결혼하는 건 위독한 할아버지의 부탁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할아버지라는 인간은 20년은 더 거뜬히 살만큼 건강합니다. 이 사람의 병은 모두 둘을 빨리 결혼시키려고 꾸민 쇼였지요.

조금만 기다리면 애들이 자라 결혼하고 애까지 낳는 걸 볼 수 있었을텐데 왜 그랬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하나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손녀 딸의 의지와 지적 능력이 충분히 굳기 전에 자기가 정한 사위감과 멋대로 맺어주기 위해서였겠지요.
그렇다면 이 할아버지라는 인간은 올해 제가 영화관에서 본 인간들 중 가장 혐오스러운 악당입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인권 문제로 넘어갑니다. 아직 중요한 인생 선택을 할 능력이 없는 아이에게 타의로 결혼을 강요하는 것은 분명 인권 침해이며 학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6세의 여자이 부모의 동의하에 결혼할 수 있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법률 자체가 얼마나 야만적이고 성차별적인지는, 상식있는 사람이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이 인권침해의 과정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요? 물론 16살 신부의 반항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보은은 남편이라는 작자가 저지르는 상당한 수준의 성희롱(변명에 따르면 '장난'이랍니다)을 견뎌야 하고, 학교 선배와 연애를 하며 자기 길을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건 오래가지 않아요. 결국 남편의 '진심'을 읽은 뒤 그 결혼 속에 안주하게 되니까요. 로맨틱 코미디의 해피 엔딩 규약이 이 영화에서는 정말 한 사람의 인생 자체를 가두는 감옥이 된 것입니다.

최소한의 선을 긋기 위해 만든 '섹스 금지'의 규칙 역시 끔찍하게 위선적입니다. 오히려 정말 성적 관계를 다룬 영화들보다 더 음탕해요.
영화의 농담 대부분은 다양한 종류의 성적 암시들과 문근영의 어리디 어린 외모, 교복 페티시를 결합하는 것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결코 높은 수준의 농담들은 아니지만, 이들은 제한된 의미에서 '먹힙니다.' 그건 문근영과 김래원이 상당히 잘 캐스팅된 배우들이라 이런 이야기에 기능적으로 딱 맞기 때문입니다.

문근영의 젖살 통통하고 아기같은 이미지(이 영화에서 정말 귀엽게 나오는 건 사실이에요)와 김래원의 느글느글하고 느끼한 이미지의 결합을 생각해보세요.
그러나 영화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캐스팅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요.

[어린 신부]는 좋은 코미디가 아닙니다. 농담은 서툴고 설정은 억지이며, 많은 한국 '로맨틱 코미디'들이 그렇듯 엉터리 멜로와 과장된 코미디가 어색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캐스팅은 잘 되어 있지만 그게 결코 보기 편한 건 아니고요.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인권 감수성'은 거의 야만적일 정도로 떨어집니다. 이것도 편견이 섞인 표현이라 쓰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후진국 냄새가 풀풀 나는군요. (04/03/26)










16976517446376.jpg

16976517455882.jpg

16976517466069.jpg

16976517476361.jpg

2004년 듀나 리뷰인데
그당시에 나를 포함 아마 대부분이 별 문제의식을 못 느꼈을 작품...
근데 요즘에 와서 다시 짚어보면 진짜 토나올 정도로 구리고 역겨운 영화인 거 같음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183,645 / 5895 페이지
번호
제목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