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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아나운서의 '해맑음', 이젠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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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3일,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아래 〈나혼산>)는 김대호 아나운서 일가친척이 설 명절을 보내는 풍경을 방송했다.

김대호 아나운서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친척들의 박수세례가 이어졌다. 예능 신인상 수상 축하박수였다. 일가 친척이 잡힌 첫 화면이었는데 성인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잠깐씩 성인 여자들이 카메라에 잡힐 때도 있었다. 그들은 주방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누가봐도 종일 일한 몰골이었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넓은 마루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남자들과 대조적이었다.

어른 할아버지가 몇 대손을 기억하라며 강조할 동안 상차림이 시작됐다. 상차림이 시작되는 순간 그 말 많은 〈나혼산> 패널들은 갑자기 말수가 줄어들고 얼굴에는 당혹감이 어렸다. 김대호 아나운서는 모든 식구들이 일을 '분담'하기에 상차림이 빠르다고 해맑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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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막힌 패널들

얼핏 봐도 성인만 30명이다. 김대호 아나운서는 남자들이 접시 옮기는 화면을 보고 '분담'이 잘된다고 했다. 30인분 식사 준비를 하면서 고작 접시를 나르는 일을 '분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 많은 음식 중 한 가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분담'했던 남자가 과연 있을까.

패널들이 입을 딱 벌린 채 다른 멘트를 못 찾고 있는데 김대호 아나운서는 또 해맑게 '가족들끼리 사이가 좋아서 명절을 기다린다'고 한 술 더 뜬다. 명절 당일 오후까지 주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들의 의견도 들어봤냐고 묻고 싶었다.

김대호 아나운서는 직장 내 회식 문화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이 끝나면 다른 사람들과 눈도 안 마주치고 회사를 빠져나와 본인만의 여가생활을 즐겼다. 대중들은 그 당당한 모습을 '바람직한 K-직장인'이라며 부러워했다. 건강한 개인주의로 보였던 그의 행보가 '나만 아니면 돼'의 이기주의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다. 딱히 힘들 일 없는 명절 모임에서는 모두와 눈맞춤하는 해맑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패널로 나온 코쿤이 며느리들을 보며 '진짜 영웅들'이라고 할 때 김대호 아나운서는 말이 없었다. 생판 모르는 남이 하는 역지사지를 정작 당사자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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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음이 다르게 보일 때

'그런 명절문화를 김대호 아나운서 혼자 만들지도 않았을 텐데 뭐 그리 예민하냐'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당연하다. 아직 그는 중간 서열이라 집안 문화를 주도할 힘이 없다. 서열도 안 되는데 무조건 바꾸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에게 문제 의식이 없었다는 게 아쉽다.

2024년에 남의 집 제사를 위해 내 집에 못가고 종일 일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이게 이상하다는 문제 의식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해맑은 모습으로 방송을 할 수 있었을까. 해맑음은 보통 긍정의 의미로 쓰이지만 이번 〈나혼산>의 해맑음은 '문제의식 없음'을 증명한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대한민국 문화에 역행하는 김대호 아나운서의 행보를 나도 한때는 응원했다. 남들이 부르짖는 - 아파트, 좋은 차, 명품 등 - 좋은 것들이 굳이 내게 필요하지 않다며 미련없이 고개를 돌렸던 그가 멋있었기 때문이다. 김대호 아나운서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해 주관적인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많아져야 이 사회의 소모적 경쟁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서 그의 영상 조회수 올리는데 나도 보탬이 됐다.

그런데 이제 그의 영상을 볼라치면 내 부모님도 못 만난 채 모르는 남의 조상 제사상을 차리던 여자들 생각이 먼저 날 것 같다. 혼밥 할 때 볼 다른 영상을 찾아야겠다. 그런 해맑음은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047/000242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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