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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번째 백패킹 다녀왔습니다. - 가평 어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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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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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를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렇습니다.

82년 매화꽃이 필무렵, 부모님께서는 처음으로 집을 장만하셨습니다.

아마 이게 제가 기억하는 마지막 이사였습니다.

더 이상은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만 있던것은 아니였습니다.

집을 장만했다는 의미를 잘모를 나이라 또 다시 언젠가는 다른곳으로 이사를 가야된다는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지금 기억해보면 제 기억을 거슬러 오르고 올라 가장 오래 기억속에 남아 있는 최초의 기억입니다.

 

갯벌입니다. 나이는 꽃다운 18세. 전남 고흥이 고향인 어머니는 갯벌에서 조개 캐는 것을 즐거워 하셨다고 합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가장 즐거웠던 기억은 그 시절이였나 봅니다.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기억하고 있는 장면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늘 그 시절을 이야기하십니다.

 

태어나보니 죽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당연히 그렇게됩니다. 

삶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가장 즐거웠던 날을 그리워하며 마음속에 남깁니다.

또는 그 반대일수도 있습니다.

주로 어렸을때의 기억이 오래남고 나이가 들 수록 기억을 회피하는 것을 보면 죽어가면서 모든 기억을

지워야한다는 무의식이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 죽음을 문전에 두었을때 딱 한장면, 어떤 시절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게 될까요.

저는 아마도 죽어가고 있는 그 순간의 제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할 듯 합니다.

힘들고도 긴 인생을 지나온 피로감으로 인해 제 마지막은 죽음앞에서 최초이자 마지막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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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기간입니다. 갈 수 있는 산이 제한적입니다.

64번째 백패킹은 가평에 위치한 어비산으로 다녀왔습니다.

해발 828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닙니다. 어비산은 꽃구경 하기에 좋은 산은 아닙니다.

참나무,잣나무,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숲내음 맡기에 충분한 산입니다.

1월달부터 3월말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여러병원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틈틈이 알바도하며 백패킹도 다녀왔지만 게으름에 후기는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제 4월입니다. 어느정도 시간적여유가 생겨 새로운 직장도 구해야하고 그 전에 백패킹을

한번 더 다녀오기로 합니다.

 

선거개표 프로그램을 시청하느라 밤을 지새웁니다.

아침에 간 초음파와 피검사가 예약되어 있어 잠을 좀 잤어야했는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침이 밝았습니다. 공복으로 가야하기때문에 물로 입만 가볍게 헹구어내고는 병원으로 출발을 합니다.

검사가 끝나고 11시가 다되어 갑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꾸려 다시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한시간 조금 더 걸려 어비산의 들머리인 어비산장에 도착을 합니다.

오전이기도 하고 평일이기도해서 그런지 사람이 없습니다.

등산화를 꺼내 갈아신고는 산으로 들어갑니다.

 

입구부터 참나무가 즐비합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꽃보다 나무를 좋아합니다. 

긴 시간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을 나무를 경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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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km남짓 짧은 코스, 800m이상을 올라야하기에 초반부터 경사가 심합니다.

그래도 아침공기속에 스며나오는 나무냄새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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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오르막입니다.

땅위로 쌓여있는 낙엽들덕에 가을인지 봄인지 구분이 안갑니다.

조금만 고개를 들어 새순을 본다면 봄은 봄인데 그것을 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냥 머리를 땅에 푹 박고는 힘겨운 다리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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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에 작은 꽃들을 봅니다. 사람이나 산짐승들이 아무생각없이 지나치다 밟아도 할말이 없는 곳에 

피어나 있습니다. 길 한켠으로 옮겨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럴수가 없기에 그저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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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겠습니다. 조금 쉬었다 가야겠습니다.

체력이 이렇게까지 떨어졌나.... 그러고보니 팔과 다리에 근육이 없습니다.

일도 안하고 운동도 안하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오늘따라 앙상해보입니다.

가져온 바나나하나를 먹습니다. 괜히 사과가 먹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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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숲내음도 짙어집니다. 바람이 나무를 타고 넘어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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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어느새 참나무에서 잣나무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잣나무 숲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저기 껍질만 남은 잣열매가 발에 툭툭 걸립니다.

나무가 바뀌면서 내음도 달라집니다.

한 여름이라도 서늘할만큼 숲이 우람합니다.

잠시 눈을 감고 그대로 멈춰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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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산이라 그런지 다른 산에 비해 멧돼지들이 진흙목욕을 하고 간 흔적들이 많습니다.

배설물들도 종종 보입니다. 

산을 다니면서 멧돼지를 직접 본 적은 한번 있습니다.

몇마리 새끼들과 함께한 가족이였고 거리가 있어 안심하고 지나간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조심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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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상 멧돼지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주변이 너무 조용합니다. 이곳은 빠르게 지나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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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조금 지나 잠시 쉬어갑니다.

앞에 있는 소나무에 가려 보이지를 않지만 유명산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어비산은 주변에 있는 유명산이나 연인산, 운악산, 예봉산,중미산에 비해 덜 유명한 산이라

찾는 분들이 많지는 않지만 좋은 산은 좋은 산입니다.

세상에 나쁜산은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가평에 있는 산들은 거의 다 다녀온 것 같습니다.

 

풍경을 감상하며 간식을 먹습니다. 벌써부터 종아리와 허벅지에 통증이 몰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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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여유가 있어 조금 길게 휴식을 취합니다.

떠날때가 되어 일어서는데 나도모르게 '영차' 소리가 나옵니다.

오늘 힘들기는 힘든가 봅니다.

 

평이한 능선을 조금 걸으니 이제부터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늘 그렇듯 육산이든 골산이든 능선부위에는 바위들이 놓여있습니다.

심심한 산길이였는데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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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는 있지만 생각보다 힘듭니다. 힘들어도 재미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거친 숨소리가 휘몰아칩니다. 호흡을 애써 가다듬어봅니다.

맑을것이라는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곧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집니다. 서둘러야하는데 서두를 힘이 없습니다.

우비도 없고 배낭커버도 없습니다. 이미 땀으로 온몸이 젖어있는데 비쯤이야...

그냥 터벅터벅 길을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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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입니다. 오래전에 있던 봉수대 터라고 합니다.

지금은 누가 쌓아놓았는지 작은 돌들로 형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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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시작 1시간이 조금 넘어갑니다.

정상에 거의 다와갑니다.

언덕만 오르면 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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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비산 정상에 오릅니다. 주변에는 나무들로 전망이 없습니다.

용문산이 해발이 높아 그나마 나무사이로 보이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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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박지로 이동을 합니다.

몇년전에 거북바위 위로 새롭게 데크가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정상에서 그리 멀지 않아 쉽게 도착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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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가 있어 배낭을 내려놓고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누워봅니다.

세그루의 소나무 사이로 하늘이 열립니다.

바람도 적당하게 불어옵니다. 햇살은 따스합니다. 눈만 감으면 바로 잠에 들것 같습니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낮잠을 자볼까하다가 그러면 밤에 잠을 못잘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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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시원한 맥주한캔 해야겠습니다.

콜라를 가져올까 맥주를 가져올까 망설이다가 간초음파 검사때문에 보름간 금주한 나에게 작은 보상이라도

해주고자 오늘은 맥주를 선택했습니다.

소나무의 짙은 향기아래에서 마시는 맥주는 신선놀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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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의 수많은 산들의 그리메를 볼 수 있는 곳이지만 미세먼지 탓인지 흐린 날씨 탓인지

사진으로는 지워진 모습처럼 담기지를 않고 바로앞에 유명산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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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6시가 다되어 가는데 아직 한낮처럼 느껴집니다.

평일이기도하고 올라오는 동안 한사람도 만나지를 못해 텐트를 설치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저녁은 컵라면과 삼각김밥입니다.

그러고보니 오늘 첫끼입니다. 

텐트밖에서 랜턴없이 저녁을 먹는 것도 오래간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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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까지 다 마십니다.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마에는 땀이 흐르는데 몸은 추워옵니다.

아직 산위는 겨울과 봄사이 어딘가에 놓여있나 봅니다.

가져온 패딩을 꺼내입습니다. 곧 일몰이 시작됩니다.

산그리메를 따라 내려가는 해를 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이것으로 만족을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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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눈썹처럼 길고 예쁜 초승달이 떠 있습니다.

밤바람이 추워 텐트안으로 들어갑니다.

누워서 유튜브를 봅니다. 오랜 시간 백수로 지내며 하루종일 유튜브만 보다보니 이제는 질립니다.

몇달간 알바로 모아놓은 돈으로 부모님 병원비를 내드렸습니다.

다시 직장을 구해야하는데 알바구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다른때와는 다르게 잡념이 계속해서 쌓여옵니다.

어서 빨리 자야겠습니다.

 

오늘도 텐트사진 한장 찍고 들어와 신경안정제를 먹습니다.

그리고는 곧 잠에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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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잠시 허공을 바라봅니다.

이곳이 내방인지 텐트안인지 생각을 해야합니다.

가끔이지만 공간이 구분이 되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핸드폰을 켜봅니다. 새벽 5시10분.

일출을 보기위해 5시30분으로 알람을 맞춰놓았는데 문득 눈을 떴습니다.

 

밖으로 나가봅니다.

어제보다 하늘이 더 내려와 있습니다.

예보상으로는 어제 오후 그리고 오늘 오전 날씨는 맑음이였는데 누군가 착각을 했나봅니다.

다시 텐트안으로 들어와 따뜻한 믹스커피에 빵으로 아침을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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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안을 정리하고 배낭을 꾸립니다.

밖으로 나가 하늘을 살핍니다.

해가 떠오르는 쪽은 나무가지로 가려져 있지만 맑은 날이라면 일출은 상관없이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오늘은 포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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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다 꾸리고 벤치에 앉아 날이 좋아지지는 않을까 잠시 기다려봅니다.

시간이 지나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오늘은 그만 내려가기로 합니다.

오늘도 아니온듯 다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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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간을 내려갈 즈음 하늘이 맑아집니다.

산에서 보는 하늘은 다릅니다. 이유는 설명해 드릴 수 없지만 감각이 그렇게 느낍니다.

오늘도 바라본 하늘은 '딱' 입니다. 적당하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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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릴까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꽃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실까하여 한장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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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에 걸쳐 주차장으로 내려옵니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오늘도 텀블러에 남아있는 차가운 냉커피와 하루만에 담배를 피워봅니다.

산을 오르는 모든 길이 아름답고 산에서 보는 모든 것들이 경외롭지만

하루만에 피는 담배도 버금갑니다.

 

 

드넓은 갯벌에 쪼그리고 앉아 앙증맞은 손으로 즐겁게 조개를 캐던 소녀는 

이제는 스텐트시술과 갑상선비대증과 황반변성과 백내장 수술과 골다공증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내 어머니가 되어있습니다.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 어머니의, 소녀의 환한 미소가 떠올려집니다.

그것이 어머니가 기억하고 싶은 간직하고 싶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기에

저역시 그런 어머니의 얼굴을 상상속으로나마 기억하고 싶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있을때 누가내게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기억하는 기억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82년 이맘때 매화꽃이 활짝 피어있던 집으로 이사를 온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왜냐고 물어보면 그날이 마지막으로 이사를 했던 날이었고 그래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지금은 비록 50이 넘어 직장도 없고 통장에 잔고도 거의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최초의 기억보다는 조금이라도 행복한 기억을 죽을때 가져가기 위해서라도

노력하고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10시에 집에 도착을 합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장비들을 널어말리고 정리를 합니다.

운동을 다녀오신 어머니께서 김치찌게를 맛있게 해주십니다.

 

"엄마, 엄마는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하는 기억이 어떤거야?"

 

다시 갯벌에서 조개캐는 기억을 말씀하십니다. 

어머니의 첫 기억을 들으며 같이 점심을 먹습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곳 더 아름다운 곳 다녀와 글과 사진 남기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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