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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번째 백패킹 다녀왔습니다. - 영월 구봉(대)산 백패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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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물을 싫어합니다.

정확히는 물을 무서워 합니다.

어렸을적 사촌들과 저수지에서 자주 놀고는 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같이 놀던 사촌들도 내가 사라진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숨이 끊겨 죽는다는 무서움 보다는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

나타날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그 어둠속에서 불쑥 나타날 새로운 '그' 무엇인가가

두려웠습니다.

그 순간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셔옵니다. 곁에는 걱정스러운 듯 사촌들이 저를 내려다보고

서 있습니다. 입에서 왈칵 물을 쏟아냅니다. 

사건이 있은 이후로 수영장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습니다.

대중목욕탕을 가더라도 욕탕속에서 2분이상 견디지를 못합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그' 존재는 아직까지 본적도 없습니다. 실체가 없기에 남은 인생이 더 두려운것 같습니다.

죽기전에 한번이라도 본다면 두려움앞에 당당하게 벗어날수 있을까요.

본적도 없고 알수도 없는 그때 물속에서의 '그' 존재는 '두려움'이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닌 내가 모르는 그 어떤것과 마주해야하는 '두려움'이였습니다.

불면증도 아마 그즈음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죽는다는 두려움보다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두려움이 더 커다란 문제입니다.

죽음이야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지만 삶은 죽어야 끝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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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번째 백패킹은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해발 901m의 구봉(대)산으로 다녀왔습니다.

구봉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너무 많기에 쉽게 구별하기 위해 원래의 이름인 구봉대산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구봉대산은 잉태를 뜻하는 양이봉, 태어남을 뜻하는 아이봉, 청년기를 뜻하는 장생봉,벼슬길에 나아가는 관대봉,

인생의 절정을 뜻하는 대왕봉, 지친몸을 쉬어가는 관망봉,병들고 늙음을 뜻하는 쇠봉,죽음을 뜻하는 북망봉

그리고 윤회를 뜻하는 윤회봉 이렇게 9개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산불방지기간이라 정상에서 9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출입을 할 수가 없습니다.

들머리에서 정상까지만 다녀왔습니다. 8봉이 정상입니다.

 

차로 2시간 30분을 달려 구봉대산의 들머리인 법흥사에 도착을 합니다.

주말이라 일찍 서둘러 온다는 것이 너무 일찍 도착을 해버렸습니다.

영월과 정선에 위치한 산들을 좋아합니다. 날산이 많기도하고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아서 좋습니다.

오늘도 주말인데 산을 오르는 사람은 저 혼자입니다.

가볍게 몸을 풀고는 들머리로 들어섭니다.

곧게 뻗은 금강송들과 흐르는 계곡소리가 계절을 잊게 만듭니다. 실제로 봄기운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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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사의 한 스님이 맨발로 매일 산책을 한다는 이곳은 누가와도 평화로운 길입니다.

순조로웠던 인생의 한 시절처럼 곱고 또 곧게 뻗어있습니다.

시작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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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정도 걸으니 구봉대산의 본모습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날산이 시작됩니다. 좋은 시절 다 갔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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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더워 옷을 하나 벗습니다. 겨울산을 왔는데 아직 산은 가을입니다. 

해가 닿지않는 곳에서는 얼음이 종종 보입니다.

산 아래에서 불었던 시원한 바람은 칼바람이 되어 땀을 식혀줍니다.

멈춰서면 겨울이고 움직이면 봄가을입니다.

기온과 상관없이 바람은 차갑고 온몸은 고됩니다.

땅이 코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심합니다. 이럴땐 올라야합니다. 멈춰서면 고통이 더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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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나 윤회설을 믿지는 않지만 이 산을 오르니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닮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로 오를수록 고통은 크지만 뒤로 보이는 시야는 절경으로 바뀝니다.

험할수록 산은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바로 앞에 능선이 보입니다. 계단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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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으로 오르자 널목재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합니다.

바람에서 찬기가 느껴집니다. 벗었던 옷을 다시 꺼내 입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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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목재에서 조금만 지나면 1봉이 나타납니다.

각 봉우리마다 표지목으로 봉우리의 이름과 그 뜻에 관한 이야기들이 적혀있습니다.

촬영은 하였지만 이곳에 따로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해서 찾아보시면 쉽게 나옵니다. 

기분탓인지 몇개의 봉우리에서는 표지목을 읽다가 눈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일부분 철학적인 질문도 포함이 되어있어 자문하다보면 괜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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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대산은 다른 산에 비해 나무가 많은 편입니다. 지난번에 다녀온 같은 지역의 장산처럼 험준하지는 않지만

여름이 되면 꽤 볼만할 것 같습니다. 여름에 다시오기로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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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5봉부터는 꽤 힘들다는 글을 보고 왔습니다.

한번 내려가고 다시 오르니 곧 2봉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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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봉은 2봉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래도 다른 봉우리보다는 높은 편이라 첫 전망이 눈에 들어옵니다.

멀리 백덕산이 보입니다. 저곳도 언젠가는 올라야할 산입니다.

산은 산입니다. 칼바람이 불어옵니다. 오늘 강풍주의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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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박지인 6봉이 보입니다. 구봉대산에서 정상 다음으로 높은 곳입니다.

전망이 제일 좋은 곳이라 박지를 6봉으로 정했습니다.

생각보다 능선이 길어 시간이 오래걸립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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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이 산에는 저만 있나봅니다. 산에서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걸어가는 제 발걸음소리와 헛헛하게 내뱉는 제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얼마간의 고된 시간을 보내고 4봉에 도착을 합니다.

다니다보니 구간 구간별로 표지목에 적혀있는 이름들과 일치합니다.

이쯤되니 내가 구도승이 된듯한 기분이 듭니다. 배낭이 봇짐이되고 폴대가 지팡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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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세월에 뒤틀려 쓰러진 나무가 보입니다.

손으로 쓰다듬어 봅니다. 감히 상상도 되지않습니다. 얼마간 이러고 있었는지 또 얼마동안 저렇게 

놓아두게될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나의 '그' 두려움이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지 쉽게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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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봉이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그 전에 5봉을 지나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힘든 구간입니다. 

표지목에 적힌 내용들을 자문하며 발길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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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봉에 도착을 합니다.

힘든 구간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견딜만 합니다. 

한꺼번에 바람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나무를 통과하는 바람소리가 귓가를 쩌렁쩌렁하게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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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봉의 끄트머리 바위에는 멋진 소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손 닿을수 없는 곳이라 바라만봅니다. 

소나무도 저를 바라만 봅니다. 이제보니 저 소나무는 적당한 곳에, 정확한 거리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과의 거리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어렵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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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까지 오르는 시간보다 능선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꽤나 걸립니다.

이곳에 오시려거든 꼭 장갑은 착용을 하고 오시기를 바랍니다.

6봉까지 이동하는 구간에는 바위가 많습니다. 길도 좁습니다. 

가면 갈수록 힘들어집니다. 봉우리 구간중에 제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만큼 정상과는 가까워지겠지만 가장 힘든 구간입니다.

높아야 멀리볼수 있고 힘든 후에야 쉼이 찾아오듯 인생처럼 묵묵히 6봉을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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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돌 하나주어 얹어놓고 오늘도 무사산행을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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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박지인 6봉입니다.

정상다음으로 높은 곳이고 전망이 제일 좋은 곳입니다.

영엄했던 나무도 시간을 빗겨갈수 없었는지 세월에게 모든것을 건네어주고 유아독존 부처가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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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가 거의 다되어갑니다. 서둘러야합니다.

배낭만 내려놓고 정상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30여분을 걸어 정상에 도착을 합니다. 해발 901m 구봉대산 정상입니다.

8봉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마지막 9봉까지는 산불방지기간동안 출입금지라 등산은 이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일몰이 오기전에 다시 박지로 이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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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0분이 걸려 박지로 돌아옵니다.

더 이상 올라올 사람이 없기에 텐트설치를 시작합니다.

젖은 옷도 갈아입습니다.

생각보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옵니다. 찬기가 심하게 느껴집니다.

일찍부터 핫팩을 하나 터트려 우모복속에 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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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이 잘 보이는 쪽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일몰이 시작됩니다.

일출이 새로운 시작이라면 일몰은 새로운 끝입니다.

시작이 끝나야 끝이오고 끝이 끝나야 새로운 시작이 시작됩니다.

시간은 늘 윤회합니다. 

그것이 좋든 싫든 상관이 없습니다. 섭리이고 이치입니다.

어찌보면 윤회라는 것은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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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저녁은 컵라면입니다. 집에 참치캔이 하나 있어서 들고왔습니다.

삼각김밥대신 라면에 넣어먹습니다. 

저는 캔참치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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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옵니다.

텐트 천정에 매달린 조명이 연신 춤을 춥니다.

아무래도 오늘밤은 잠을 다 잔것 같습니다.

밖으로 나가봅니다. 몸이 휘청거리는데, 그냥 느낌이 그런것 같습니다.

사실 그정도는 아닙니다. 그래도 소리하나는 우렁차게 불어옵니다.

핸드폰으로 하늘의 별을 찍어봅니다. 하늘은 맑아 별이 많이도 보입니다.

오늘도 텐트사진 한장찍고 잠을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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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입니다. 바람은 많이 잦아들었습니다.

선잠으로 밤새 시달리다가 새벽녘에야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알람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7시입니다.

조금 있으면 일출이 시작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텐트 밖으로 나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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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오늘 일출은 끝인가봅니다.

다시 텐트안으로 들어와 모닝빵과 커피를 마십니다.

주말이라 등산객이 있을지 몰라 빠르게 철수를 합니다.

배낭을 다 꾸려놓고 한시간정도 먼산을 구경합니다.

희뿌연 구름들 사이로 잠깐 해가 보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먹구름에 가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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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몰랐는데 자리를 떠나려하니 고사목이 한그루 더 있었습니다.

서로 외롭지 않게 의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근처에 더 있나 찾아보았지만 단 두그루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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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을 짊어집니다. 오늘도 아니온 듯 다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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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와 법흥사에 잠시 들립니다.

불교신자이신 어머니를 위해 이것저것 촬영을 합니다.

불상이 없는 사찰은 처음입니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 젖은 옷을 갈아입고 하루만에 담배를 피웁니다.

텀블러에 남아있던 차가운 커피도 마십니다.

이것이 극락입니다.

 

2시간30분을 달려 지금은 집입니다.

텐트는 옥상에 널어말리고 나머지 짐들을 정비합니다.

 

다시 태어나면 돌로 태어나고 싶다는 배우 송지효씨의 말이 생각이납니다.

돌이 아니라도 나무나 흙, 구름이나 흐르는 물로 태어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렸을적 저수지물에 빠졌을때 죽음보다 두려웠던 어둠속의 '그' 무엇인가는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야 할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삶이 끝나면 죽음이 오는 것은 확실하지만 죽음이 끝나면 다시 삶이 시작이 될까요.

윤회가 될까요.

삶이 지옥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윤회가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보다는 지옥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줘야합니다. 최소한 공평하지는 않더라도 균형은 맞춰야합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곳 더 예쁜 곳 다녀와 글과 사진 남기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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